문화
호남정신문화의 산실, 월봉서원고봉 기대승을 만나러 갑시다
김공규  |  kimgonggyu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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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18  16:4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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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봉서원 모습

광주 광산동 너브실마을(광곡마을)에 위치한 호남정신의 산실 월봉서원에 방문했다. 월봉서원의 외적인 모습 뿐만 아니라, 고봉선생의 사상을 소개하려고 한다.

   
▲ 출입문인 망천문,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서원은 오늘날 중고등학교에 해당하는 사립학교"라고 광주시 문화해설사인 김인원 선생님께서 과거와 서원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 주셨다.

   
▲ 건물 좌우의 산책로인 철학자의 길이 아름답다.

월봉서원 입구 교육관에서 친절한 관장님의 안내가 있었는데 유물관의 유품, 서적, 체험프로그램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 교육체험관인 강수당
   

▲ 150m 인근의 고봉묘소, 서원 밖의 아름다운 풍광의 백우정과 신도비. 유물관에 소장된 <고봉집> 18권 14책으로 시문, 논사론이 실려 있다.

 

두 분의 안내를 통해 조선중기 때 성균관대사성, 대사간, 공조참의를 지냈으며 퇴계사상을 능가했던 성리학의 대학자인 고봉 기대승(1527~1572)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다음은 돌아오기 전 교육체험관 관장님이 건네주신 서적《고봉선생의 생애와 학문》(정병연 저)을 통해 고봉의 사상을 정리한 것이다.

고봉의 생애

1527년 고봉이 태어날 때 일어난 기묘사화의 영향으로 사림들이 지방에 흩어져서 입신을 뜻을 드러내기를 기피하였다. 1545년 을사사화의 영향으로 다시 사림들이 중용되면서 고봉도 스무살에 과거에 급제하였다. 급제당시 나이가 26년 연배인 당시 성균관의 대사성 퇴계 이황선생과 사단칠정을 비롯한 성리논법을 통해 자신의 학문적 지평을 넓혔다.

조선 전기의 사화들은 그것이 훈구세력에 의해서든 궁중 또는 외척에 의해서든 간에 화를 당한 쪽이 거의 신진사류였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며, 사화의 영향으로 사림들이 고향에 은둔하고 학문연구에 전념하여 성리학의 발전을 가져왔다. 한편, 은둔한 사림들에 의해 서원(書院)이 일어나 사림의 학문적 도장이 되었다. 《사화와 당쟁으로 얼룩진 피의 역사-강진원》

고봉은 1546년 과거에 응시하여 스무살에 향시의 진사시 2등으로 합격하였고 1549년에 사마시에서 생원, 진사에 모두 2등으로 합격하였다. 그때 이미 그 명성이 사림에 드러날 정도로 문장은 그를 필적할 사람이 없었다. 1551년 알성시(謁聖試)에 합격했으며, 1554년 동당향시에 장원으로 합격하고, 1557년에는 100권의 주자대전을 발췌해 《주자문록》3권을 편찬했다.1558년 7월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와 일재(一齋) 이항(李恒)을 배알하고 태극도설(太極圖說), 추만 정지운(鄭之雲)과 천명도(天命圖)를 논하였다. 1558년 10월 문과을과에 장원 후 퇴계선생과 사단칠정을 처음 논의하고 1559년부터 편지 왕래를 통하여 13년간 기대승과 이황의 사단칠정(四端七情) 논쟁이 있었다.

1559년부터 1566년까지 퇴계 이황과 8년간 120통의 편지를 통한 사칠이기논쟁(四七理氣論爭)은 율곡에게 이어져 조선 후기 성리학의 유학사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고봉은 논쟁을 통한 잦은 교류로 1566년 퇴계 이황을 스승으로 모셨다. 이 논쟁은 국내학술 사상 유례없는 본격적인 학술 토론이었던 점에서, 또 논쟁의 주제가 성리학의 근간을 이루는 인성론의 핵심적인 내용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고 있다.

   

▲ (좌 아래)기숙사인 존성재'자신을 성찰한다' 와  명성재'밝은 덕을 밝히는 데 성의를 다하라'      (가운데)교육장소였던 빙월당, (위 좌부터)장판각(문집11권,판각474매-유형문화재19호 보관), 제사음식을 장만하는 제기를 보관하는 장소인 법사각, 일 년 두번 3월과 9월 춘.추제를 올리는 숭덕사로 들어가는 정안문('조용하고 평안한 마음을 가지라'는 뜻)

사단칠정논쟁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은 조선시대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주장한 논리적인 도덕감정론이라고 할 수다. 사단(四端)이란 맹자(孟子)가 실천도덕의 근간으로 삼은 ‘측은지심(惻隱之心)·수오지심(羞惡之心)·사양지심(辭讓之心)·시비지심(是非之心)’의 이(理)에서 나오는 마음인 인간의 본성에서 우러 나오는 마음씨, 선척적이며 도덕적인 능력을 말하며 인의예지와 관련된 윤리적인 범주에 속하고,

 

칠정(七情)이란 <예기(禮記)>와 <중용(中庸)>에 나오는 ‘희(喜)·노(怒)·애(哀)·구(懼)·애(愛)·오(惡)·욕(慾)’의 인간의 7가지 자연적인 감정을 말하는 것으로 기(氣)에서 나오는 마음인 인간의 감성을 총칭하는 인성론의 범주에 속한다 . 맹자(孟子)에 의하면, 인간은 사단칠정(四端七)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 사단(四端)이 도덕의 근간이며 자연·인간·사회가 가지고 있는 본성(本性)이다.

기대승은 사단(四端)은 ‘순수한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 기(氣)가 모이고 흩어지면서 생기는 감정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안계환 저서《중국핵심강의》통해 요약하자면 퇴계는 기(氣)는 이(理)에 종속되어 기(氣)는 혼자 발현할 수 없고 반드시 이(理)가 있어야 한다. 도덕적 감성을 가진 이라면 어떤 행함에 있어서도 악함이 없다. 인간이 원례 갖고 있던 도덕적 감정이 인간의 행동을 지배한다고 주장했고 고봉은 기(氣)의 독자성을 부여하여 기(氣)가 모든 현상의 시작에 해당하는 것이며 인간본성의 어떤 것이 우러러 나오더라도 어떻게 실천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필요에 따라 실행하게 되면 그 이후의 원리가 유추된다. 본성과 자연적 감정 중 어느 것이 우선이 아니라 두개가 서로 융합적으로 나타나며 타고난 것도 후천적 노력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이 논쟁은 고봉에 영향을 받는 율곡에게 전해져 이(理)와 기(氣)가 모두 중요하다는 이기일원론으로 발전한다. 이러한 논쟁이 학계에 큰 파문을 일으켜 200여 년 간에 걸쳐 유명한 사칠변론(四七辯論)을 일으킨다.

   

▲ 부모에 효도를 못다한 마음을 담아 일곱주의 소나무를 심었다 칠송정에 느티나무만 남아 있다. 기씨가문의 서당인 귀후정('본연의 자세로 돌아간다'는 뜻)

고봉의 업적

고봉을 보는 유림들의 평가는 이렇다. 퇴계는 고봉을 “이학에 대한 소견이 월등하고 호남의 제1의 선비이며, 통유(通儒)다”라 하였고, 율곡은 “호걸스러운 기품, 높은 담론과 청렴한 학자로서 학식과 영명성이 퇴계가 그를 따를 수 없다” 라고 고봉을 극찬했다.

 

고봉이 살았던 짧은 46년 세월은 진지에 대한 독실한 탐구와 실사적 실용학으로서 경세택민의 정열로 점철된 발전적 가치를 지닌 생애였다. 그는 조선후기의 실학의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 그는 인간의 주체성과 능동성을 인정한 바탕위에서 윤리와 도덕을 구축하려고 하였다. 악을 선으로 바꾸는 것도 수양에 의해 가능하다고 하여 인간을 신뢰하고 인간에 비중을 둔 천인상감(天人想感)의 입장을 고수하였다. 그의 사상은 인간의 실존적 삶에 주안점을 두었다.

 

고봉의 경세사상의 요지는 '군권의 기본강령은 요순과 같은 임금이 되는 입지(立志), 적절한 인재 등용, 관료에 일정한 권한을 인정하는 책임정치 구현, 형벌이 아닌 관용의 정치, 신하의 직언(곧은 상소),직행, 과다한 세금징수를 피할 것, 부패관원 축출, 백성의 최저생계수단 보장' 등 시대에 앞선 실학적 사고를 주창했다.

   
▲ 빙월당 8개 기둥 서판(-심사부급상고암:책을 지고 스승을 찾아 높은 암자에 오르니 -창이희광가주참:창 위에 비치는 햇빛 달리는 말과 같네  -금약부근명우차:오늘 힘쓰지 않으면 내일도 마찬가지  -저용타일한하감:용과 돼지로 나누어지는 후일 한탄한들 어찌하랴  -삼천제자불위소:삼천명의 제자 적은 것은 아니지만  -입실승당유기인:승당하고 입실하는 사람 그 몇이나 있을까  -정사문장개시말:정사와 문장 모두 말단의 공부라  -고금유설덕행인:예나 지금이나 오직 덕행있는 사람을 말하네

고봉의 교육관은 학교가 흥해야 인륜이 밝혀지고 국가가 발전한다는 교육사상이며 그의 예학사상은 현실적이며 논리정연했으며 그의 문학세계는 성리학적 세계와 중국시인의 풍모와 더불어 다른 독자적인 초월의 경지를 일궈냈다.

 

이러한 청백리의 당파를 초월한 놀라운 업적에도 불구하고 고봉의 학문이 역사속에 묻힌 이유는 호남의 성리학자에 대한 연구는 영남과 기호학파에 비한다면 거의 황무지에 가까웠으며 당시 당파의 세나 학파지연, 신분지위, 왕실에 대한 충성도에 따라 공과를 평가받는 학문외적인 원인 때문이었으리라.

 

월봉서원을 다녀온 후로 제가 느낀 점은 고봉은 사후 500년 동안이나 주자이후 성리학의 제1인자로 추앙되어온 퇴계사상과 율곡사상에 가리워져 고봉사상이 위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현재에까지 퇴계와 율곡사상의 종속적 위치에서 다루어짐으로써 고봉은 세상에 드러나지 못한 학자가 되어 왔다는 것이다. 이는 실로 안타까운 역사적 사실이며 그의 사상이 현재에 사는 우리에게 여전히 크나큰 교훈을 주고 있을 뿐만아니라 낮게 평가되고 가리워진 그의 업적은 재조명할 시기에 왔다고 생각한다.

2019년 월봉서원의 체험프로그램 소개

   
▲ 차와 체험(살롱,공방,라디오 운영중)이 있는 다시와 철학스테이가 가능한 이안당'즐겁고 편안한 집'(방5개,거실1,주방1이 있다)
   
 

월봉서원의 프로그램은 18년도 문화재청 우수사업으로 선정된 프로그램으로 일반인이면 누구나 신청가능하다. 선비의 하루, 살롱드월봉, 꼬마철학자 상상학교, 철학자의부엌, 고봉다움, 다시의 공방, 이안당의 철학스테이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교육체험관에서는 ‘월봉로맨스’, ‘월봉서원이 건네는 기세등등 여유’를 실시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체험프로그램 참여를 적극 권장한다. 참여하는 모든 분들은 500년 전의 고봉 청백리 선비정신과 이황과의 나이를 초월한 사상로맨스에 반하리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 현재 실시중인 월봉로맨스와 기세등등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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